2012 김원조 의병마라톤 대회 참가기
김원조의 전국의병마라톤대회 참가기
의령 의병마라톤대회 김원조 선수 참가
의령군과 경남일보사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2012년 의병마라톤대회가
27일 의령읍 서동리 국민체육센터에서 김채용군수를 비롯해 강성문의장,
이연근경남일보 사장등 기관단체장과 지역주민등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열었다.
이날 참가 신청한 풀코스 300여명, 하프 400여명, 10km 600여명,
5km 건강달리기부문등 선수 3,000여명과 지역주민과 가족까지 총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한편 남자 풀코스 부문은 심재덕선수로 2시간 44분 32초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진주사범의 호프 김원조 선수는 아래와 같은 좋은 기록으로 완주의 영광을 안았다
여기 좀 싯따 가이소.
남은 거리 8KM, 정암나루 정암루 앞, 바나나 한 조각, 물 두 컵, 느티나무의 짙은 그
늘에 들어서니 스무나무명의 연세 드신 분들 긴 의자에 앉아 계신 네. ‘여기 좀 싯따
가이소’ 정겨운 소리에 끌리어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물 세 컵을 들이 키고 나니
정신이 좀 맑아져서 수다를 한참 떨다가보니, 'FINISH LINE' 부근 옅은 그늘에서 초조
하게 기다리고 있을 분들에게 생각이 미친다. 다시 뜨거운 햇살 속으로 들어간다.
의병의 날 정부지정 후 두 번째 맞는 의병의 날, ‘2012년 의병 마라톤대회’
전날, 연휴로 인한 교통 정체로 7시간의 지루한 장거리 이동과 33도가 넘은 더위로
데워진 잠자리로 설친 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회장에 도착하니 야속하게 햇살은
쨍쨍하기만 하다. 지난 어느 대회에서 만났던 분을 만나 ‘무더울 거라’ 하니 ‘천천히 걷지요’ 하네.
지나가던 한 사람 왈 ‘평소보다 한 20여분 더 걸릴 거요’ 한다. 설마? 나중에 현실로 다가 오더라.
09시 조금 지나 출발 ! 이번에도 조금 늦게 출발하여 널찍한 주로를 혼자서 천천히 달린다.
의령 읍내 중심가를 막 벗어나니 2KM 지점 급수대, 물 컵을 잡는다.
4KM 지나 좌로 돌아가니 의령 소싸움장이다 .
왼편엔 소 휴게소에 대여섯 마리의 황소[싸움소]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중의 한 마리 참 잘 생겼다. 듬직하다. 정말 욕심난다. 고삐 짧게 잡고 나란히 거닐고 싶다.
나 꼬맹일 적, 축산조합의 종우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은퇴한 황소가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의 담당은 나. 오후엔 같이 산으로 가 풀 먹이고 나는 그늘에 앉아 시간 보내고 해 질녘이면 고삐 잡고 돌아오는데,
평지에 임하면 어른들이 나를 황소의 잔등에 태워주면 소의 등에서 마음조리며 집 마당으로 들어서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소가 꼬맹이의 말을 잘 듣는다며 신기해했다.
내 말을 잘 들은 것이 아니고 내가 그의 말을 잘 듣고 그가 나를 사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근데, 그놈의 전쟁 통 북괴군 치하 북괴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낮에는 같이 산속에 숨어있기도 했는데,
야밤중에 들이닥친 한 무리의 북괴군의 패잔병들에게, 소달구지와 함께 징발 당하였다.
그때 사립문을 나서면서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파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속으로 삼켰을까.
잘났다고 자부하는 우리들 사람만 몰랐을 뿐이지 얼마나 우리 사람을 원망했을까. 그때의 그림이 그려진다.
5KM 지점 지나 이어지는 정암제 [뚝방길] 시멘트로 포장된 길 발바닥의 느낌이 별로다.
왼편 저 아래에는 의령천이 흐르고 7KM 근처에서 우로 도니 의병장 홍의 곽재우 장군님의 기마상[동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좌측 아래는 남강 저 흐르는 물속에는 나 어릴 적 살던 동네서 흘러 내려오는 물도 함께 하겠지.
어릴 시절의 기억들이 솟아나고 이어지고. 저 남강 물의 흐르는 역방향으로 반환점까지 나란히 한다.
이어지는 길은 약간의 자갈이 섞인 길. 조심스레 달려간다. 2-300M의 그늘 길 기분이 좋다.
정암나루 부근의 느티나무 숲길이다 되돌아 올 때 잠간 앉아 쉴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
우측엔 깎아지른 절벽 아래 매달린 시멘트 길, 내려쬐는 햇볕과 절벽에서 내뿜는
열기에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느려진다.
이번 급수대엔 수박 조각도 있네. 한 조각 입에 넣고 물 컵 들고 서서히 걷는다. 또 하
나의 제방길 [대산제] 이번 대회 대비 최근 포장된 길 아직 기름 냄새가 풍긴다.
13KM를 지나 자동차 길을 만난다.. 오르막과 내리막길 끝나고 다른 하나의 뚝방길.
화양제. 길 양편에 벚나무를 심어 놓았네 몇 년 후엔 그늘이 되어 좋겠다.
좌측 강 건너 자동차가 많이 달리고 있다. 나보다 훨씬 빨리 달리네. 남해안 고속도로인가보다.
다시 일반도로로 이어지고 17Km 표시판 이 보인다.
상일제 [상이제] 진입 직전에 FULL COURSE 선도 차량이 다가오고 차위의 전광판 숫자 1시간 34분 몇 초 표시하고 있다.
내가 조금 늦은 것 같다. 반갑지 않는 시멘트 상이제길, 그저 앞만 보고 간다.
19Km 부근에서 짧은 끈에 의지하여 반환점 돌아 달려오고 있는 두 분에게 기대하시는 기록대로
무사히 완주하시길 마음으로 빌어준다. 반환점 돌아 되짚어가는 길 발걸음은 느려지고 뜨거운 햇살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짙은 구름이라도 그리고 살랑살랑 강바람이 불어 주면 좋으련만 이것도 저것도 없고 대산제의 최근 포장된 길에선 더운 김만 더 하다.
남은 거리 10KM 지점 급수대에서 초코렛 한 알 먹었더니 속에서 불이 낫나 갈증이 심해 달릴 수가 없다.
진행요원의 물 병 받아 마시고 있는데 뒤 따라온 여자 달림이 갈증난다며 들고 있는 물병 낚아채 마시고는 그대로 앞서간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 쓴 웃음 짓고.
절벽에 매단 시멘트 포장길에서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눈길 돌리는 강 건너 함안군과 연결된 보행교가 보이고
정암루 주변의 숲이 보인다. 물도 마시고 한숨 돌리고 가야지.
한참 쉬고 다시 뙤약볕을 달린다. 정암제 뚝방길을 달리는 5-6명이 시야에 들어온다,
몇 명이나 앞 설수 있을는지 다리에 힘을 가한다. 남은 거리 7Km 지점에서 왼편으로 방향이 도는데
정암나루에서 직선으로 난 도로가 있네. 500m도 되지 않은 길을 두고 3km를 돌아가다니.
이건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다. 정암제 끝 지점 한사람 옆을 지나니 ‘대단하십니다’ 한다.
‘나이 먹은 이의 객기요’ 하며 앞서는데 잠시 따라오더니 기척이 없다.
다시 소 싸움 장 옆의 소 휴게소. 이젠 편안한 자세로 지그시 눈 감고 되새김질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해 그름 무렵의 체력단련 훈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간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이제 남은 거리 4km 남짓 어영부영 걸어가도 제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겠다.
더 지치면 걷고 물 있으면 물마시고 보행로가 그늘졌으면 보행로로 달리자.
읍내 중심가로 접어드니 1,500 여 m 전방 좌로 도는 곳, 저기가면 거의 다 가는 것인데, 까마득하게 멀어 보인다.
언제 저기까지 가지. 자꾸 멀게만 느껴진다. 좌우의 그늘진 곳에서 박수치는 분들도 간혹 있다.
손 흔들어 답하고 한발 한발 옮긴다.
우로 도는 모퉁이에서 두 사람 앞질러 나서니 종점의 아치가 보이고 스피커에선 ‘40,***번 김 원조가 들어오고 있다’고,
주로 왼편 보도에서 ‘선생님’하면서 3명이 뛰어온다. 물병을 건네주며 물마시라고 한다.
연이어 스피커에선 ‘선생님과 제자가 함께 달려오고 있습니다.
선생님보다 제자들이 더 힘들어 한다’는 울림이 들려온다.
여럿의 환호 속에 종점아치 통과 ! 좌로 눈 돌리니 큰 글자 새겨진 플랭카드
‘김원조 선생님 ******’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다.
1963년 3월2일부터 1963년 12월 24일까지, 열 달 동안의 철없던 까가 머리 병아리선생 시절
담임했던 낙서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들, 군 입대로 헤어졌는데, 이제는 환갑의 나이인 어린이들이,
백발이 된 선생의 분수 모르고 도전하는 마라톤 FULL COURSE 완주 모습를 보고 축하하려고
부산, 대구에서 먼 길 마다않고 달려와 2시간여를 기다리다, 10개월의 짧은 인연이, 긴 세월 흘려보내고 많은 날들을 쌓은,
50년 되는 해에 만나는 순간이다. 손잡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등 인사 나누고 이름 묻고 웃고 떠들고,
플랭카드 앞세워 기념사진 찍는데 주위의 분들도 사진기를 들이댄다.
산들 바람 부는 그늘에서 곧 도착할 친구[장 장군]를 기다리며 이야기 꽃 피운다.
김 원조의,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이정도면 괜찮은가 ?
2012.05.27. 의병마라톤대회에서 김 원 조.
* 5월 29일 출근하며 그린 그림을 글로 옮기고 보니 뭔가 매끄럽지 못하고 어설픈 글이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