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일의 5월
2023 0523
【점유이탈물 부당취득죄】
며칠전 3,000만원 짜리 다이야 손목거리를 분실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길가다 잃어버렸다는 곳의 CCTV를 재생해본 결과,
물건 떨어뜨리는 광경은 찍히지 않았으나, 어떤 남자가 엎드려서 뭘 주워가는 장면이 찍혔고 그 남자는 세워둔 포터를 타고 이내 사라지는 것이었다.
경찰은 차종과 차번호를 판독하여 이 차의 행방을 알아낸 후, 차 내부를 강제 수색해보았더니 문제의 다이야 손목거리가 운전대옆 서랍에서 나왔다.
이 남자는 길을 가다가 반짝 하는 것이 있어서 주웠는데 모조품인줄 알았지 진짜인 줄은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주운 물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은 점유이탈물 부당취득죄에 해당되므로 이 남자는 불구속 입건 되었다.
이와는 반대되는 이야기가 최근 2건이나 있었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 A씨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에서 현금 500만원과 신용카드가 든 샤넬 가방을 분실했다.
근처를 지나던 시민 김복현(43)씨가 자정 이후 디자인플라자 계단에서 이 가방을 발견해 근처 서울 중부경찰서 광희지구대에 분실물 신고를 했다.
김씨는 조선비즈에 "신용카드 이름이 한자로 적힌 것을 보고 가방 주인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중국인에게 한국의 신고 시스템이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A씨는 분실 후 약 11시간이 지나 서울관광경찰대 동대문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동대문센터 김동윤 경사 등 경찰관들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가방을 찾지 못했고,
경찰 분실물 시스템인 '로스트112'에 접속해 보았더니 가방이 분실물로 등록된 사실을 확인하고 광희지구대를 곧바로 찾아갔다.
A씨는 분실 신고가 접수된 지 약 50분 만에 가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김 경사는 "중국인 관광객이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며 "신고 정신이 투철한 시민과 경찰의 빠른 상황 판단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뿐 아니라, 지난달 7일에도 러시아 관광객들이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던 버스에서 현금 300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 버렸지만 버스기사가 보관하고 있어서 무사히 되찾은 사례가 있었다.
또 일본인 관광객이 여권과 500 만원치 달러와 엔화를 되찾은 일도 있다.
이처럼 요즘 한국 사람들은, 남의 물건 주우면 비록 현금 천만원이더라도 <인 마이 포켓> 하지 않는다.
차 안이면 운전기사에게, 차밖이면 경찰에게 갖다준다.
그만큼 시민식견이 향상되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슬그머니 주운돈을 차지하면
<점유이탈물 부당취득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뭣 때문에 남의 것 차지해 죄인이 될 것인가?
신고해서 칭찬받고 1/10 포상금 받는것이 낫지.
오늘도 건강하셔요,
이길것 없네 코로나
나갈것 없네 새세상
大同社會함께어울려
둥글둥글 살다가세
2023 0515

[ NOTE ]
아카시아 꽃 좋다!
눈물이 다 나네!
1961년 3월 사범학교 입학해서 올갠타러 음악당에 가면 바로 뒤에서 아까시아 꽃 냄새가 문씬 나던 그 때가 생각나서...
현숙아! 이태야!
이번 토요일 5.20. 12:30,
마산 어시장 감포회집 (245~9961)에서 개최하는 19회 동기회에 참석하여라,
동기회 왔다가면 기분이 활짝 펴져서 아픈 것도 다 낫는다.
현주는 6.26일날 뱅쿠버로 출국하는데 며칠전 부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6월 모임에 못나올지 모른다.
그러므로 동기회 나와서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거라,
매년 나올것이다! 하고 현주는 장담하지 마는, 80 넘은 우리가 또 만나기 힘든다.
그러므로 손이나 한번 잡아 보고 가거라,
문현주 한국 임시전화
010~2630~8947
2023 0512
【Home, sweet Home】
Mid pleasures and palaces though we may roam
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
A charm from the skies seems to hallow us there
Which seek thro' the world, is ne'er met elsewhere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An exile from home splendor dazzles in vain
Oh give me my lowly thatched cottage again
The birds singing gaily that came at my call
And gave me the peace of mind dearer than all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1.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2.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면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하리
저 맑은 바람아 가을이 어디뇨
벌레 우는 곳에 아기별 눈 뜨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1852. 4.10. 유럽 각지를 방랑하던 미국 시민중의 한사람,
" 존 하워드 페인"이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31년이 지난 뒤 군함으로 그의 유해가 본국인 미국으로 운구되어 왔다.
유해(遺骸)가 뉴욕에 도착(到着)하던 날,
부두에는 뉴욕 시가 생긴 이래 최대인파(最大人波)가 몰려 들었다.
대통령(大統領)과 국무위원(國務委員) 등 수많은 시민(市民)들이 조의(弔意)를 표했다.
그는 권력자(權力者)도, 돈 많은 재벌(財閥)도,위대(偉大)한 과학자(科學者)도 아니었다.
평범(平凡)한 시민(市民)에 불과한 분이, 어떻게 전 미국인(美國人)들의 가슴을 적실 수 있었을까?
그것은 위 노래 한 곡의 가사 때문 이었다.
원제목은 "Home, sweet Home "(즐거운 나의 집)으로 알려진 명곡이다.
그가 이 노래를 지은 것은,
프랑스 파리에서 돈 한 푼 없는 비참한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였다.
평생 결혼을 하지 못 했던 그는 가정이 없는 외롭고 처절함을 맛 보았기에, 가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가정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이 가사를 썼던 것이다.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기에 그 어떤 유명한 작곡가 보다도 더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돈으로 좋은 집은 살 수가 있어도,
좋은 가정은 살 수가 없다.
○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퇴근 후 집 뒤뜰에 있는 낡은 창고에서 연구로 밤을 샐 때,
모두들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꿈이 이루어 질 것’이라며 격려와 믿음을 심어 주었다.
겨울밤에는 추위에 떨면서도 남편을 위해 곁에서 등불을 비추어 주기도 했다.
포드가 크게 성공했을 때 기자가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 고 물었다.
그러자 포드는 '내 아내의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아내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도 상관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포드는 훗날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다.
대 부호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하자 그가 말했다.
"가정은 건축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해도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 바로 가장 위대한 집입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글이 있습니다.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祈禱)하는,
아내가 있는 집보다
더 축복(祝福)받고
아름다운 집은 없다.
계절의 여왕ㆍ가정의 달 5월,
5.8일 어버이날,
꽃을 달아드릴 어버이가 없는
슬픔을 당하여 비로소 가정의 소중함을 느끼며,
남은 반 달이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건강하시고 행복한
5월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
한국의 홈,스위트 홈, 어머님의
마음도 보내드립니다.
○ 어머니의 마음
양주동 작시
이흥렬 작곡
1.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2.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3.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https://youtu.be/F4I5B424cHw
▪︎(정영자 메 조소프라노)*
2023 0504
【성덕대왕신종 (聖德大王神鍾)】
(Sacred Bell of Great King Seongdeok)
어제 경주 갔다온 이야기를 드리면서 에밀레 종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드렸는데
그런 정도를 가지고는 소개라 할수 없습니다.
과정 이창성은 건설부에서 공직을 마치며 여생을 보낼 곳을 경주로 정하여 경주에 정착, 경주의 문화재를 샅샅이 조사한 분이고,
현주는 10년동안 캐나다에서 6개월, 한국에서 6개월을 반투어 살다가 3년전 영주권을 얻었으나, 코로나로 인하여 발이 묶여 꼬박 3년만에 한국에 나온 사람이다.
거기다가 문화재 전공인 소제가 곁들였으니 에밀레 종앞에서의 모임이 보통 모임이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어
에밀레 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자세하게 드리고자 합니다.
혜공왕은 771년 종이 완성되자 신비한 소리를 낸다하여 성덕대왕신종 (聖德大王神鍾)이라 명명하였다.
새신 자가 아닌 신기로울 神자,
神鍾이다.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두 손을 모아 향로를 받들고 공양을 드리고 있으며
그것을 휘감아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보상화무늬가 구름처럼 표현되어 있다.
보상화 안, 사람 위의 무늬는 천인에게서 나오는 영기이다.
종은 서기 771년에 완성된 후 봉덕사에 봉납되었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봉덕사 전체가 수해로 유실된다.
그러나 무거운 종만은 떠내려가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혀서 약 700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후 조선 시대 세조 5년 (1460년)에 영묘사로 옮겨졌으나 종각이 소실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종각이 소실되자 또 다시 노천에 버려져 있던 것을 중종 초년(1506년)에 경주 성문종(城門鐘)으로 옮겨 1915년까지 아침, 정오, 저녁과 삼경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1915년 구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다가 1973년에 현 경주박물관 구내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대학교의 엄영하 교수는 종을 칠 때 외부 진동은 멀리 잘 전파되지만, 종 내부에서 일어나는 진동은 안에서 서로 충돌하거나 반사하여 잡음이 나게 되는데 종상부의 음관이 이러한 잡음을 뽑아내는 <음향 필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인 황수영 박사는 이 음관이 신라의 삼보인 <만파식적>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황 박사가 이 대통을 <만파식적>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 기본형이 원형이며
둘째, 대를 형상화하였으므로 마디가 있고
셋째, 대이기 때문에 내공(內空)이어서 종신(鐘身)에 이르기까지 관통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동양식.
이상적인 진동양식은 좌측과 같으나 실제 진동 양식은
점선은 높은 쪽 진동수의 마디선이고 실선은 낮은 쪽 진동수의 마디선이다
또 하나의 구조적인 특징은 명동(鳴洞)이다.
신라종은 종각(鐘閣)에 높이 매달고 치는 것이 아니라
지상보다 조금 위에 종을 달고 치는데,
종구(鐘口)바로 밑의 바닥이 우묵히 패어 있어 공명동(共鳴洞)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 명동 시스템은 세계 다른 나라 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라 특유의 시스템으로,
음관으로는 종 내부의 잡음을 빨아내고 명동은 공명진동을 일으켜, 종을 쳤을 때 긴 여운이 남게 만드는 것이다.
모형 실험에 의할 경우 명동이 좋은 종소리를 내게 할 뿐만 아니라 은은한 여음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것을 맥놀이라 한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이병호 교수는 이 명동의 적정 깊이는 현재 종구(鐘口)와 지면 사이의 공간을 45센티미터라고 했을 때, 94센티미터라고 계산하였다.
현재 경주박물관에 시공된 명동의 구조보다 더 깊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라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음향학, 진동학 등의 설계와 주조 및 타종 방식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채택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종의 타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장무 교수는 ‘에밀레종의 타점 위치(撞座)가 종의 안전이나 수명에도 유리하며, 종소리의 여운도 길어지도록 절묘하게 제작돼 있다’고 지적했다.
계산에 의할 경우, 종을 매단 지점에서 당좌 중심가지의 이상적인 거리는 260센티미터인데 실제 당좌 중심까지의 거리는 238센티미터로 불과 22센티미터 차이였다.
이병호 교수는 또한 후리퀀시 스펙트럼 어낼리시스 (Frequency spectrum analysis)를 이용해서
화음상의 평점을 계산하여 종소리를 비교 평가하였다.
음질 평가치를 정의하여 그 수치를 계산하는 것인데 한국의 유명한 종을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다음과 같았다.
1) 에밀레종 : 86.6
2) 상원사종 : 71.5
3) 보신각종 : 58.2
각 종의 음질평가치에 의하면, 에밀레종이 제일 좋은 종소리를 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연구 결과가 아니더라도 에밀레종 소리는 명실공히 세계 제일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츠보이 료헤이에 의하면 일찍이 일본의 NHK방송국에서 세계적인 명종들의 종소리를 모두 녹음하여 일종의 종소리 경연대회를 연 일이 있었는데 에밀레종의 종소리가 단연 으뜸이었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종은 주파수가 160헤르츠 정도인데 에밀레종은 무려 477헤르츠에 달한다고 한다.
에밀레종의 몸체에 새겨져 있는 1,000여 자의 명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한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 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때와 사람에 따라 적절히 비유하여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
(중략)
효성스러운 후계자인 경덕대왕 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왕업을 계승하여 여러 일에 힘썼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어 세월을 대할수록 그리움이 일었고,
거듭 아버지를 떠나보내어 대궐에 나아갈수록 슬픔은 더해졌다.
그리워하는 마음은 점점 슬퍼지고 영혼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삼가 구리 12만근을 희사하여 1장(丈)이나 되는 종 1구를 주조하고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우리 성군(효성왕) 께서는 행실이 조상에 합치되고, 그 뜻이 지극한 이치에 부합하여 빼어난 상서로움은 지난 어느 세월보다 기이하며, 아름다운 덕은 이 시대의 으뜸이다. …
태후(太后)께서는 은혜로움이 땅처럼 공평하여 백성을 어진 가르침으로 교화하고, 마음은 하늘처럼 맑아 부자(父子)의 효성을 장려하였다 …
이에 〈경덕왕의〉 유언을 돌아보고 마침내 오랜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담당 관청에서 일을 준비하고 기술자들은 모형을 만드니, 때는 신해년 12월이었다.
이때 해와 달이 교대로 빛을 내고 음양이 기를 조화롭게 하고, 바람이 온화하고 하늘이 고요하여 신기(神器: 종)가 완성되었다.
미국과 한국은 앞으로도 100년이상 우정을 과시할 것이다.
에밀레종은 주종장 서광식 씨에 의하여 1:1로 복원되어 미국 LA 항구에 평화의 종으로 기증되어 있다.
오늘도 건강하셔요,
이길것 없네 코로나
나갈것 없네 새세상
大同社會함께어울려
둥글둥글 살다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