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사범

24 손수영의 수필감상-가을날의 그 여행

고향길 2024. 6. 19. 04:01

밴쿠버 여행 수필 2

가을날의 그 여행.

가을이 떠나가고 있었다. 나도 가을 따라 어딘가로 떠나가고 싶었다.  

가뭄 끝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내 얼굴 주름살이 여행을  망설이게 했으나 그것이 더 여행을 감행하게도 했다. 대책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캐나디안 제인Jane에게 한 달쯤 있다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얼씨구나 생각 없이 선뜻 비행기를 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  주구장창晝夜長川 밴쿠버 시내만 구경할 작정이었는데 다른 건 못  해도 로키산맥은 봐야 한다고 제인이 패키지여행을 신청했던 것이다. 제인의 딸 소냐가 선물한 빅토리아에서, 세상 모르고 있다  오기도 했다.  

레이크 루이스ake Louise  

로키산맥은 밴프 국립공원을, 밴프 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절경 '레이크 루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취록색 비단 폭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운 호수를 마주 한 순간 와우! 외마디 말고는 말  이란 말은 모조리 잊었다. 물빛으로 끝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색채는 햇빛의 고통에 의헤 이루어진다.'던 괴테의 말을 빌리면 물이 저토록 선명하고도 깊은 옥빛을 띠는 까닭은 빙하수에  함유된 옮겼다. 우리도 호텔커피를 마시자 했다. 로비에 들어섰다. 높고 둥근 천장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 알 듯 모를  듯 긴가민가 피아노 소리가 흘러내린다. 갈고리 손에 머리끄덩이라도 잡혔는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에 풀린 명주옷고름 같은 바이올린 선율이 안개에 싸인 듯 아득하고 맑디맑은 피아노 음은 호수에서 튕겨진 물방울인 양 옥빛으로 영롱하다. 유키 구라모토의 'Misty Lake Louise'였다. 음악은 미열처럼 전신으로 퍼지고 나는 한숨 같은 여운에 잦아든다. 어쩌다 듣는 음악 레이크 루이스, 안개 속의 레이크 루이스는 아련한 비취색으로 내게 스며들고 있었다.  

제인이 사라졌다. 아무도 없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큰일이다. 영어도 못하는데. 어느 통로를 통해야 제인  한테 갈 수 있을까. 용케 사람이 나타난다. 커피숍? 통했다.  

커피숍 근방에는, 닐 다이아몬드의 '스위트 캐롤라인' 노래를 생각나게 하는 캐롤라인에 사는 가족을 둔, '사단법인50플러스코리안' 회장 한주형 부부, 우리를 멋진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준 사진  예술가 부부와 마주서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제인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제인의 미소는 커피 항을 타고 모란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전설이 되고 그 전설을 기억하며 깎아지른 듯 직립한  거대한 바위산들, 몸집으로 이름값 하는 짐승들과 도도하게 흐르는 계곡물과 급격한 폭포, 하늘을 찌를 듯 커다란 침엽수들을 거느린 웅장한 로키산맥은 마치 거칠지만 덩치 큰 산골총각같이 순수하기만 하다. 생생한 야생의 표식인 이빨 드러내는 포효도 없고  눈알 부라리는 엄포도 없다. 품은 넓어서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손맛은 품안에 안았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길들여져서는 안  되고 길들일 수도 없는 로키산맥이다.  

고속도로 길가에 불에 타서 시커멓게 그슬린 채 서 있는 앙상한  나무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정부 방침은 자연 치유. 그대로 두면  몇 년 후 살아날 거라고. 자연의 힘을 믿는 그 여유도 대자연을 닮았다. 어렴풋한 기억 한 자락에 의지해 시 한 조각을 나무의 정령精靈에게 바친다.  

-타죽은 나무가 내 안에서 자란다. 시커먼 나무 위에 열사흘달이 떴다.  

캠루프스  

동요를 비롯하여 수많은 고향의 노래 중 특히 좋아하는 노래는  이수인 곡 '고향의 노래'다,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는 베르디의  프로벤자 내고향으로'  이 아리아를 들으면 나를 키워준 고향 경남 사천이 떠오르고 네 살까지 외할머니와 살았던 본태本胎고향.  원산이 생각난다.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이야기만 듣던 곳, 아버지가 살던 그곳이 그립다는 건 그들이 그립다는 거 아닌가.  

불현듯 엄마가 생각나면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를 듣게 된다.  몇 날 며칠 듣는다. 사교계의 여왕에게 마음 준 아들에 대한걱정으로, '네 마음속 고향의 바다와 흙을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버렸느냐 고향으로 돌아가자' 애끊는 심정을 절규하듯 토해내는 아버지의 절박한 하소연은, 엄마 살아생전에 이 딸년을 걱정하는 그  절절함으로 내 심장에 콱 박힌다. 엄마 심정에 내 심정을 접붙이고 눈물콧물 짜면서 듣는다. 신파도 그런 신파가 없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면 진정된다.  

소금사막호수Salt Lake로 준사막지형인 까닭에 와이너리가 유명하다는 곳, 송어의 서식지이며 남부내륙의 행정중심지, 노스톰슨강과 사우스톰슨강이 만나는 지점이 캠루프스kamloops다. 지명의  뜻도 두물머리. 제인은 여행시작 얼마 후부터 캠루프스는 사위 브랜트의 고향이라고 말하고 또 말한다.  

좋아하는 커피도 캠루프스에 있단다. 캐나디언 커피 팀 홀튼을  제치고 캠루프스 커피라니, 드디어 캠루프스의 커피숍 A&W에서  Jane의 커피를 마신다, 쓰기도 싱겁기도 상큼한 듯 묘했다.  

모든 걸 다 이룬 이 시점에서,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 몰랐던 자신의 본태고향, 알게 모르게 사위의 고향이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제인에게 다가왔음직하다.  

법과대학 졸업 후 훌쩍 캐나다로 이민을 간 제인이다. 젊디젊은  시절 아닌가. 공부하고 직장생활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콧물인지  눈물인지 땀인지도 모르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터. 타국을  고향으로 실아가는 기량을 지혜롭게 터특했을 것이다  

제일 어려웠던 때가 제일 행복이더라.'는 제인의 말에 내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가슴이 먹먹해 왔다. 애벌레를 벗어난 나비의 날갯짓은 용기, 그것 아닌가. 나비의 용기로 제인은  또 하나의 고향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듯. 동양의  장자, 서양의 리차드 바크가 나비의 날갯짓을 그리 생각했듯.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제인이다. 정서적으로 단단해 보이는 그의 부드러움은 힘과 설득력을 가졌다. 어디 봄바람이 부드럽기만  하랴. 꽃바람일 때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지 않던가. 제인을 생각 하면 루이제 린자의 r생의 한가운데,가 생각난다. 주인공 니나처  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했을  듯싶어서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오기 전날 저녁에 제인의 피아노가 푸른 물결로 일렁이며 우리 모교의 교가를 불러내고 있었다. 3절까지 불렀다. 제인이 교가 부르며 피아노 반주를 하고 음치인 나도 3절까지 불렀다. 음치 아니라는 칭찬까지 받으며 불렀다. 교가가 우리를 우리이게 하던 것이다.  

빅토리아 여행  

모든 색이 섞인 세상에서 유독 하얀 태양과 파란 대양大洋이 눈 부시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렀다. 빅토리아 여행은 A~Z까지의  모든 경비를 던 제인의 딸 소냐의 선물이다. BC(Britih Columbia)주의 주도州都이며 행정 중심지인 빅토리아 여행의 첫 삽은 수상비행기가 떴다. 빅토리아로 갈 때는 수상비행기로 35분, 돌아올 때  는 620번 버스와 1시간 반쯤 걸리는 페리호를 이용했다.

빅토리아의 대표적 관광명소이며 랜드마크로서 캐나다 국기가  펄럭이는 엠프레스호텔Empress Hotel National Historic Site of Canada  에서 사흘간 머문다. 건물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캐나다 국기는 이유가 있었다. 이 호텔이 '캐나다국립 역사적 유산' 지정을 받은 때문이다. 고풍스러우며 아름다운 외관은 외국영화에서 본 영국 건축물의 오래된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기대에 부풀어 호텔 문을 밀었으나 프런트에서 방 열쇠를 주지  않고 기다리게 한다. 프론트 직원과 제인이 한참 동안 말을 주고  받더니 제인이 카드를 내밀고서야 방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전통적 분위기 때문인지 복도는 어둑했지만 내실은 고급스럽고 집기들이나 소모품까지도 품위 있다.

호텔 부대시설 선물가게에서 제인이 손녀의 선물을 샀다. 나는  여기서 큰 실수를 한다. 소냐의 선물을 준비해야 했는데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잃은 기회가 두고두고 아쉽다.  

동창생 평자가 나를 보고 항상 2% 부족하다더니 정확한 인물평  아닌가. 2% 부족은 언젠가부터 관용구처럼 쓰이는 개념용어다.  나는 어디서 언제쯤 2%의 개념을 찾게 될까.  

호텔 측에서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정중한 사과의 편지를 쓴 호텔카드와 함께 우리에게 '에프터눈 티', 오후 간식, 와인 한 병, 저녁 룸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에프터눈 티'는 이 호텔 레스토랑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제인은 사과편지를 쓴 호텔카드를 받았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고 맘이 많이 풀렸다고 한다.  

전신마사지와 월풀whirlpool을 이용했다. 인생의 한마당을 선경仙境에서 한바탕 놀다온 느낌이다. 아직도 얼얼하다.  

손수영  ㆍ
-2002년 [문예시대] 등단  
-수필부산문학회 회원  .
-우하수필문학상 올해의 작품상(2019)  
-수필집 사람에 취하다J, 공저 그 많은 날들.  

회원 수필 - 손수영ㆍ150~155

감상

손수영의 "가을날 그 여행"은
가을의 끝자락에 떠난 캐나다 여행을 통해 자연과 인간, 추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가을의 쓸쓸함과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여행의 동기로 삼고, 캐나다의 자연 속에서 잊었던 감정과 추억을 되살린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느낀 아름다움은 단순한 경치를 넘어서는 깊은 감동을 전한다. 호수의 옥빛과 빙하수의 석회질 성분이 빚어내는 자연의 예술은 작가에게 말문을 막히게 하고,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자연의 색채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다.

레이크 루이스 호텔에서 들린 유키 구라모토의 'Misty Lake Louise'는 음악과 자연이 어우러져 작가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작가는 음악 속에서 안개 속의 레이크 루이스를 비취색으로 느끼며, 그 순간의 여운에 잠긴다.

캠루프스에서는
과거와 현재, 고향과 이국의 경계가 흐려진다. 작가는 고향을 떠올리며 자신을 키워준 경남 사천과 외할머니와의 추억, 그리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베르디의 아리아에 담아낸다. 캠루프스의 커피숍에서 제인의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감정은, 잃어버렸던 본태고향의 의미를 되찾게 해준다. 제인의 사위의 고향이 제인에게도 새로운 고향으로 다가오듯이, 작가도 그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여행의 마지막에서
호텔의 사과와 함께 제공된 서비스는, 작가에게 선경에서 한바탕 놀다 온 느낌을 선사한다. 자연 치유와 인간의 손맛을 동시에 느낀 로키산맥, 그리고 그곳에서의 경험은 작가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작가 손수영과
Jane ha(하정자)


작가 손수영과 제인의 관계는, 단순한 여행 동반자를 넘어선 깊은 인간적 유대감을 나타낸다. 제인은 캐나디안으로, 손수영에게 캐나다의 자연과 문화를 소개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도, 그녀의 딸 소냐가 손수영에게 빅토리아에서의 시간을 선물하기도 한다. 제인은 손수영의 여행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며, 패키지여행을 신청해 로키산맥의 절경을 보여주고, 캠루프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등, 손수영에게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다.

손수영은 제인의 친절과 배려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잃어버렸던 감정과 추억을 되찾는다. 제인의 환한 미소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손수영에게 큰 위안이 되며, 제인의 고향과 연결된 캠루프스에서의 경험은 손수영에게 고향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이들의 관계는, 여행을 통해 서로의 삶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진정한 우정과 인간애를 보여준다.

Jane 은
손수영의 캐나다 여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로, 그녀의 행동과 태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 제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따뜻한 환대와 배려
제인은 손수영을 캐나다로 초대하고, 여행을 함께하며 세심하게 배려한다. 특히 손수영이 언어의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제인은 현지에서 손수영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그녀의 따뜻한 환대와 배려심은 타인을 대하는 데 있어 중요한 덕목이다.

2. 자연과 문화에 대한 사랑
제인은 손수영에게 로키산맥의 아름다움과 캠루프스의 고유한 문화를 소개한다. 자연과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이를 타인과 나누는 제인의 태도는, 자신의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3. 적극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마인드
제인은 단순히 손수영을 초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행을 더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패키지여행을 신청해 로키산맥을 보여주고, 캠루프스의 커피를 함께 즐기며 손수영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제인의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마인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도적으로 나서며,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관용과 이해심
제인은 손수영의 과거와 그녀가 겪는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한다. 손수영이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 있을 때, 제인은 그 감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관용과 이해심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태도는 더욱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함께하는 즐거움
제인은 여행을 통해 손수영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며,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을 보여준다. 이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는 경험과 배움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결론
제인은 손수영의 여행을 풍부하게 만들어준 친구이자 가이드로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 적극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마인드, 관용과 이해심을 몸소 보여준다. 그녀의 행동과 태도는 우리에게 타인을 대하는 법, 자연과 문화를 사랑하는 법, 그리고 함께하는 즐거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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